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The Heart of God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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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7-27 13:43 조회377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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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누가복음 15:11-32)
우리는 언제든지 본질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본질을 제대로 붙잡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승리할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일의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과 지금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버지라는 단어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드러내는 말씀이다.
1. 두 아들 이야기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나누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요구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나에게는 아버지보다 아버지의 재산이 필요하다는 선언이었다. 또 그 재산으로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땅을 팔아서 유산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그 재산을 받은 아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탕진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먹을 것 조차 없어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 때 아들은 아버지의 종으로 들어가 일을 하여 아버지에게 빚진 것을 갚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입을 맞추며 아들에게 값진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면서 큰 잔치를 열어준다.
큰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큰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게 되었다. 이유는 자신은 항상 아버지의 말을 잘 들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잔치를 벌여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그 분노 속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가치가 없는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큰 잔치를 베품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유산이 낭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상속받을 유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큰 아들로서는 받아들일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은 작은 아들이나 큰 아들, 둘 다 아버지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둘다 아버지를 떠나 있었다. 차이는 하나는 착실했고, 하나는 타락했다. 한 아들은 자신의 타락으로 인하여 길을 잃었고, 또 다른 아들은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2. 집으로 돌아오라.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다시 아버지와 관계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집은 나의 소속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아들은 품꾼으로 가서 자신이 끼친 손해를 배상하고자 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조건없이 그를 용서하고 품에 안아주셨다. 작은 아들은 떠났지만 결국 돌아왔고, 겸손히 회개하고 잔치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도 이 잔치에 참여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을 잘 지키던 큰 아들은 오히려 이 잔치에 참여했는지 밝히지 않고 이 비유가 끝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잔치를 베풀고 우리들을 초대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신다. (사 25:6, 마 8:1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잔치에 참여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이다.
3.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가?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는 사랑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기 전에는 우리 힘으로 먼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오셔서 손 내밀어 주셔서, 지금 우리는 모두 이미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반응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회개이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과 그 안에서 우리의 죄가 모두 해결되었음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믿음의 선택에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잘못된 삶으로부터 돌이키겠다는 결단이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 뿐만이 아니다. 큰 아들은 이미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된 믿음, 삶도 회개해야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하고 있었다는 자기 의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건에 맞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에 대해서 우리의 가슴이 뛰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불러서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이 땅에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좋은 옷을 입히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셨다. 우리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서 자신은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이다.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작은 아들의 입장에서는 공짜였지만 큰 아들의 입장에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결국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여 우리를 이 잔치에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공짜이고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공짜가 아니라 최선이었음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 살리는 증인으로 살아갈수 있겠는가? 그 아들을 보고 내장이 떨리는 것같은 안타까움을 느낀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느낄수가 있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그런 의미인가?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 관계를 누리는 것이다. 이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움직이기에 충분한 사랑이다. 세상의 많은 소리와 환경과 문제에 흔들리는가? 나는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사람이라서 이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그 분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내장떨리는 사랑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상관없다. 아버지가 줄 유산과 상관없이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그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선택을 하라고 예수님은 큰 아들이 돌아왔는지를 기록하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기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의 잔치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잔치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