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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 (The Life God L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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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11 06:38 조회2,541회 댓글0건
일시 : 2017-12-10 본문 : 출(Ex) 3:7-18 설교자 : 여주상목사 (Rev. John Yeo)

본문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출애굽기 3:7-18)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가 내 인생을 이끌어갔다. 나의 경험이나 욕망,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문제는 과연 내게 내 인생을 이끌만한 능력이 있냐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나의 원하는 인생을 위해 노력 할 뿐이지 모든 걸 다 되게 할 수는 없다. 열심히 살다보면 작은 행복도 누리게 되고 어느 정도 성취되는 부분도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끄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신다. 그런 분이 내 인생을 이끄신다는데 능력도 없는 우리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하면 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을 살아야겠다.

 

이것을 간단히 이야기 한다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이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이 왜 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인가? 원래 인간은 하나님 떠나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는데 내가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과일이 굉장히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이 틀리고 내가 맞는 것 같은... 그 결과로 눈이 밝아 졌는데 그 눈으로 더 좋은 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니라 벌거벗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은 그냥 우리와 함께만 있겠다는 게 아니다. 쇼핑을 하는데 남편이 옆에 있다고 하자. 근데 아무것도 들어주지도 않고 도움도 주지 않고 옆에만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차라리 없는게 더 마음이 편하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것을 못 믿는 것이다. ? 내가 더 잘 할 것 같으니까. 필요한 것을 주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필요를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착각. 그러니 내가 원하는데로 안 되면 내가 복음 안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안 될까?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어오면 예수님 믿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어온다.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는 것.

 

상황이 내가 원하는 만큼 행복하지 않다고 하자. 그러나 속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나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니 이 문제는 내게 더 유익한 것으로 돌아올 거야.” 언약 기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왜 이렇게 하는가? 이렇게 다시 살아나라고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이 언약을 그냥 믿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주신 약속 중심으로 내 삶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화날 일도 어려움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답을 내고 넘어 서는 것. 이런 것을 보고 개인화라고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이 내 것이 되는 것. 이렇게 될 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이끌림 받을 것이다. 복음은 간단하다. 주인을 내게서 그리스도께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말처럼 실재 우리 삶속에서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닌듯하다. 이래서 우리에게 출애굽기를 주셨다. 이유가 여기 들어있다.

출애굽기 3:7-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오면 되고 그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종으로 안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간단하지 않았다. 왜 이 일을 간단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나도 혹시 이스라엘 백성 같지는 않은가? 우리는 더 이상 갈팡질팡 하며 고민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믿어라.

 

하나님의 계획을 그들은 원하지 않았다.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 해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려주셨지만 백성들이 원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 놓는 것,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왔다. 그러다 가뭄 들어서 나온 것이다. 가나안 땅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지금도 유럽에 가면 최상급의 꽃과 과일이 나오고 있다. 말씀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건기가 올 때는 척박한 땅인데 우기가 오면 아주 비옥한 땅으로 변하는 것이다. 비를 누가 주는가? 비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그런 땅이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땅이지만 내 힘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척박한 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

 

그 땅에 기근이 들 때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준비 하시고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옮기게 했다. 그 때는 요셉이 청년이었으니 잘 먹고 잘 살았겠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어땠을까? 우린 가나안에서 왔으니 언젠가는 다시 가야지 싶었을 것이다. 형편이 아주 좋았지만 마음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그 문화에 젖어 버린 것이다. 처음엔 돌아가고 싶었지만 점점 그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기근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돌아가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 무려 400년이 넘는 시간을.

 

2:8에 하나님을 모르는 왕이 세워졌고 숫자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이스라멜 백성들이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이 어땠겠나? “옛날에 내가 가나안 땅에 그냥 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 왜 지금 애굽땅에서 이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런 마음보다는 내가 전에는 잘 살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새로운 왕이 들어서면서 내 인생이 비참해졌다는 생각뿐, 자기들이 지금 가나안 땅이 아닌 애굽 땅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사단이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붙잡아 놓았다. 율법을 알고 제사에 대해 알았지만 더 이상 제사도 드리지 않았다. 아무리 돈 많고 잘 살아도 지배당하고 살면 마귀 자녀인거다. 내 힘과 노력으로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더 중요한 건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 그러니 힘들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서 빠져 나오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 너는 거기서 나를 예배 하며 살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가 지금 힘든 것은 그저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 계시니까 그냥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께여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 땅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 되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까 가고싶은 것 뿐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버리니까 가나안의 풍요로움이 좋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컴플레인을 한다. 이 일이 있기 전에 홍해의 기적도 보고 마라의 물이 단 물로 바뀌는 이런 기적들을 보고나서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다. 떡을 배불리 먹었을 때 그냥 죽여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왜 구원해주셨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힘든 것이다. 하나님 떠난 우리가 당연히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녀로 살아야 하는데 이 간단한 것이 안 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저 이런 편안한 삶이 익숙해진 것이다. 세상의 방법과 가치가 내 안에 이미 체질화 되어있는 것,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고 가신다고 하는데도, 내가 너를 세계 복음화의 증인으로 쓰시겠다고 하는데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니요 저는 원하지 않아요. 애굽에서 잘 먹었을 때가 더 좋아여 하고 있진 않을까? 그래서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007 크리스찬 즉,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크리스찬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2. 불신앙

또 하나는 나의 시선이 하나님이 아닌 내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직접 지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바로가 더 두려운 것. 그러나 하나님은 확고하셨다. 내가 하겠다. 나를 믿어라. 내가 시키는데로만 해라. 다 알려주셨다. 이 모세 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약속을 가지고 떠났다. 가데스바니아라는 곳에서 정탐꾼 12명이 다녀왔는데 뭐라고 말하는가? 그 사람들을 보니까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우린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다. 나를 의지하고 살게 되면 내게 온 환경과 문제 아래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지 말고 언약을 잡고 나를 보라고 말씀하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후에 물 위를 걸어오신다. 이 예수님을 본 베드로가 나도 이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걷는다. 걷다가 바람이 나에게 닥쳐오는 걸 보고 바람을 보는 순간 빠져들어갔다. 물위를 걷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할 수 있는데 나를 바라보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준비 해 놓으셨는데 못 믿는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가고 싶지 않은 것.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 안 될 것 같으니까.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내 한계를 처다 본 것이다. 이것이 불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