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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Go on to Mat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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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8-27 05:40 조회2,208회 댓글0건
일시 : 2018-08-26 본문 : 히(Heb) 6:1-12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히브리서 6:1-12)

 

히브리서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제 완성되었으니까 교훈의 길을 다시 닦을 필요 없이 완전한데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중에 좀 난해한 부분이다. 이단들과 대화를 해보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가 있다. 또 반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자기들에게는 너무 맞는 이야기처럼 말한다. 자기들은 영적인 것을 말한다고 하지만 좀 이상한 부분들이 많다. 믿음은 믿음으로 끝이다! 그런데 자꾸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오늘 본문도 그렇다. 히브리서 6:1에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하는 그림자이다. 그 교훈의 틀을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십자가의 교훈으로 나아가라는 것이 말씀의 핵심이다.

 

히브리서 6:4-5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신앙생활을 아주 잘 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다음 말씀을 보라.

히브리서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말은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근데 우린 맨날 죄를 짓는데? 그리고 드러내놓고 욕되게 한다고 했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욕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런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하면 제 생각에 여기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잘 믿다가 타락을 했다는 말인데 이 타락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 문장에서 말하는 타락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다시 회개하는 것조차 불가능한가? 다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우린 천국을 못 간다는 뜻이 된다. 늘 죄를 짓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서 구원을 못 받았다면 말이 되겠다. 그런데 만일 타락이란 단어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실패한 것이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니까 전부 지옥에 갈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힘들게 왜 돌아가셨겠는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을 실패했다는 말인데 용납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포인트를 볼 때 이 본문은 뭔가 다른 해석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타락이란 단어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자기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드러내놓고 욕보인다는 말에 관해서도 뭔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굉장히 혼란이 올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다. 그런데다 드러내놓고 부인했다. 그럼 지옥에 갔을까? 예수님은 당신을 저주하면서 부인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셨다. 여전히 사랑하시고 사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수제자가 되고 수많은 기적이 그를 통해 일어났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드러내놓고 욕보인다는 말이 무엇일까? 이런 면에서 상당한 의문점이 있다. 우리가 천국 가서 히브리서 저자를 만나면 한번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근데 이것 말고도 본문 안에 의문점이 많이 있다. 생각해보고 정리해볼만한 것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것을 넘어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였다. 그냥 넘어갈 걸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가만히 보니 만족 할만큼 설명하려면 1시간정도가 필요하겠더라. 타락이란 정의가 단순히 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넘어가지 않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혹시 누군가가 이 부분을 들고 와서 여러분들에게 질문할까 싶어서이다.

 

히브리서 6:4-5를 보면 분명히 내세의 능력을 맛 보았다. 그리하고도 타락하였다. 그러면 답 없고 지옥이라는 이야기인데 말이 되는가? 그럼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셨나?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는데? 이 땅에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타락은 무슨 타락 이길래 우리를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와서 치면 우리는 말씀으로 치기 때문에 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과 상충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가지고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 구원은 창세전이고 우리 믿음의 근본은 은혜이다. 이것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무도 손댈 수 없다.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이지 무슨 예외가 있겠나? 그렇다면 전체적 큰 흐름의 주제에 의하여 해석되어져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물어볼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건 무슨 뜻이였냐면서.. 만약 성령이 우리의 죄 때문에 들어오기도 했다가 나가기도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괜히 죽으셨겠다. 그래서 성경 전체의 주제를 들고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속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 또 난해한 구절이 있다. 666에 관한 내용도 그렇다. 666이란 것이 하나님을 이기는 쪽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666은 사단을 의미하는데 구원 받은 자가 이 표를 받는다고해서 구원이 없어져 버린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그 말씀이 드러낼 때가 안 되어 해석을 정확히 못한다 할지라도 이런 해석으로는 갈 수 없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히브리서 6:1절에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다. 근데 아직도 구약의 행위로 자꾸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초보라고 했다. 그가 오실 것을 말한 그림자아니냐 실체가 오시기까지의 과정이다!” 하는 것. 실체가 오셨으니 이제 버려라!” 그리고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세례와 안수, 죽은자의 부활과 심판, 교훈의 틀을 다시 닦지 말라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회개와 신앙, 세례, 안수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것에 대한 교훈의 터, 여기에 대한 말씀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것이다. 기다렸던 메시야께서 오셔서 다 완성했다. 이제는 이런 모든 중요한 내용에 대해 완성이 다 되었으니 거길 향해 가라. 스스로 길을 닦는다고 해서 길이 열리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길이니 그에게로 가라! 이런 말이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도 완전한 곳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그는 완전하다. 완성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완성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완성했다. 완성했고 끝났다. 더 이상 필요 없다. 다시 한 번 더 오셔서 하실 것이 없다. 한번 만에 영원히 끝냈다. 우린 이걸 믿어야 한다. 그는 완성하셨고 그리고 그는 어떤 경우에도 영원히 완전한 길이다. 그래서 그를 의지한 자가 저주를 받은 적이 없다. 배신당한 적 있는가? 그럴 일 없다. 그의 완성하신 답은 영원히 완전하다. 그 답을 답으로 잡은 자는 한 번도 저주를 받은 적이 없다.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다. 그가 답이라고 말한 것을 인생에 답으로 잡은 자는 한 번도 배신당한 적도 없다. 무엇이 여러분들의 답인가? 앞으로 미래에 관해 무엇이 답인가? 하나님이 답이라고 말한 것을 답으로 잡으면 역사한다. 성경만 그런 게 아니다. 살아있는 증인도 많이 있다. 교회사에도 수없이 많은 증인들이 있다. 역사를 살펴보고 확실히 방향을 잡아라. 그를 생명으로 잡은 자는 전부 다 살았다. 그의 인생도 살았다. 그러므로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도 살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사실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고 사명을 받았다. 그 때 이후로 그의 인생은 살아난 정도가 아니다. 인생이 너무나도 처절했던 수가성 여인을 알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이 완전히 역전 되었다. 그 동네를 살리는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얼마나 무시를 당하던 여자인가? 근데 그 여자를 통해 생명을 얻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인생 역전 되었다. 그 이후 어떻게 살았겠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완전하고 부족하지 않다.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 예수도 믿고 이것도 해야되. 이렇게 병열로 세워둔 사람들 생각다시 해야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