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기 (A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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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9-24 04:26 조회1,652회 댓글0건본문
한 아기 (이사야 9:1-7)
▶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 “한 아기”이다. 믿지만 말고 누리면 증거는 온다. 믿으면 구원 받고 누리면 응답이 나타난다. 그래서 인생이 간단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보혈의 언약을 잡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언약의 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영원히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셨다. 아직 천국에 가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다.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을 이 땅에서도 볼 수 있다. 항상 승리할 수 있고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고 누리면 결국 집중도 된다. 언약으로 잡으면 증거를 주시고 그 언약이 계속 깊어져 개인의 많은 영적 문제들이 치유될 것이다. 24시간 이 축복을 누리며, 영적 summit이 되면 자신과 인생을 정복할 수 있고 세상을 살릴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답을 가지고 있고 그 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종이 자꾸만 되어 갈 것이다. 그러면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것을 가지고 우린 남미와 미국도 가고 세계 복음화 한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를 두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렘넌트는 너무 중요하다.
▶ 몇 일 전 목사 사모 그룹채팅 방에서 브라질에 이민을 간 일본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50년대는 일본도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아주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살길을 찾아 브라질에 이민을 갔다. 브라질은 미국과도 비슷할 정도로 국토가 크다. 농업 이민으로 주로 갔는데 이민 생활이 쉽겠는가? 성공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실패한 사람도 많이 있었겠다.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도 있고 도시로 살길을 찾아 나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힘들어서 자살도 하고... 그런데 그 중에 20%정도는 성공을 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 성공한 분의 가정에 복음이 전달 된 스토리였다. 이 분이 일본의 친척집에 방문을 왔는데 마침 친척이 그 한국 교회에 다니는 성도였던 것이다. 이 분이 복음을 받고 브라질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해달라고 해서 한국 선교사와 목사님들이 가족을 방문하러 가게 되었다. 일본에 가면 부적들 많은데 복음 전하고 부적도 다 뜯어내었다. 사진에 보니까 브라질에 홍성일 선교사님도 거기 있더라.
▶ 이 글을 읽는데 이보다 더 한 역사도 있겠지만 ‘와... 세계 복음화는 계속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일본에서 브라질에 가려면 12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가까운 우리 일본인 팀이 한번 방문해 후속 사역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복음 안에 있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정확하게 하나님이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인들이 약 200만정도 있는데 기독교인은 1%라고 하니 굉장한 밭이다.
1. 한아기
▶ 오늘 말씀은 한 아기이다. 이사야서에는 중요한 복음의 말씀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과 거기에 붙여진 많은 약속들이 들어있다.
이사야 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이사야는 예수님 오기 700년 전 사람인데 이미 갈릴리를 예언했다.
이사야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 빛은 그리스도고 그늘진 땅은 갈릴리였을 것이다.
이사야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추수할 때 얼마나 즐거운가? 군인들이 생명 걸고 전쟁을 했는데 이겼다? 적군의 물건들을 탈취할 때 참 기쁘겠다. 이런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문제를 해결 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한 아기로 인하여 그렇게 될 것이란 뜻이다.
이사야 9: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 멍에와 채찍을 꺾었다. 압제자의 막대기도 꺾었다. 기드온 용사 300명이 메뚜기 때 같은 미디안 용사를 쳐서 이긴 것이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것도 자기들끼리 싸워서 다 죽었다. 이 한 아기가 이렇게 될 것이란 이야기이다.
이사야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 섶은 마른 풀을 뜻한다. 전쟁에 마른풀이 불에 타 없어지듯이 이 한 아기로 인하여 없어질 것이다. 하는 것이다.
이시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정사 즉, 세상의 모든 정치의 주인이란 말이다. 기묘자라 모사! 너무 기묘해서 설명을 못할 지경이란 뜻.
이사야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무궁? 이런 단어는 사람에게 해당 안 된다. 다윗의 왕좌는 곧 하나님의 왕좌를 이야기 한다.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런 열심을 가지고 오늘도 우릴 살리는 것. 우린 맨날 죽을 짓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살린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약속의 말씀들이 있는데 그 핵심이 무엇인가? 한 아기가 우리에게 왔다.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다.
▶ 이전에 이사야 7장을 보았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예언이 징조가 되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유다가 이겼다. 그러므로 내가 친히 징조를 준다. 이 전쟁에서 이길 징조! 절대적으로 이길! 그럼 우린 그 언약 잡아야겠다. 당시 왕은 우상숭배를 너무 많이 하여 하나님을 배신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그를 절대적 승자로 만들었다. 오늘 마지막 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열심 즉, 이 이것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 은혜 없으면 우린 아무 힘이 없다. 우리가 이 아들에 대한 예언을 바란적이나 있나?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주셨다. 이게 하나님의 열심이다. 이 변함없는 열심을 우리도 믿어야 한다. “나는 어제 수많은 죄를 지었지만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새 날이야~!” 신자는 항상 새 출발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 다시 출발... “전에 내가 죄를 지어 일어났던 그 사건은 끝났고 하나님 앞에서 오늘은 새 일!” 이 언약을 오늘도 다시 한번 확인 해야 한다.
▶ 우리에게 태어난 그 아들이 사망에서 우릴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참 그늘진 인생 아닌가? 그런데 이 아기는 그 그늘 진 인생에서 우릴 건지는 거다. 그의 나라를 창성하게 하고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있는 멍에와 채찍을 꺾을 것이다. 십자가의 보혈로! 그의 죽으심으로! 죽었다고 해서 힘이 없는 게 아니다.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절대적인 힘이다. 우리 인생에 모든 전쟁을 풀에 숲을 태우듯이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이유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기 때문에 우린 그를 언약으로 잡으면 된다. 누리면 역사 일어나고 이것이 방법이다.
▶ 누가 하나님을 설명하겠는가? 너무 기이하고 묘해서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모든 세상의 정사를 그가 메었다. 이 모든 정치의 주인이라!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