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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롯이 망한 이유 (The Reason Lot, Who was saved, Per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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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2-20 06:17 조회1,452회 댓글0건
일시 : 2021-02-14 본문 : 창(Gen) 19:12-22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구원 받은 롯이 망한 이유 (창세기 19:12-2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답으로 주시고, 언약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언약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언약으로 구원 받고, 언약으로 응답 받고, 언약으로 전쟁하고, 언약으로 정복합니다. 언약으로 사람을 살리고, 언약으로 전도 조직을 이루고, 후대에 물려 줄 것도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언약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이것을 땅 끝까지 전하는 237의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치유와 서밋은 길이요, 내용입니다. 답은 항상 언약을 누리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계속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소원이 언약이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롯이 망한 이유

  1) 롯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였고,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와서 특별히 그 가족을 소돔과 고모라 심판에서 건져 준 것입니다. 벧후2:7은 롯을 의인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2)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은 의인이었으나 소돔, 고모라 사건과 함께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잃고 완전히 몸만 살아 나왔으며,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자기는 두 딸로 인하여 모압과 암몬이라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3) 이렇게 롯은 자신이나 가족이 육신적으로는 완전히 망했고, 후손은 완전히 복음을 떠나는 일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물론 성경에 그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은 아브라함의 삶과 비교를 해 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4) 우선 우리가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브라함이나 롯은 둘 다 언약 안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면에서는 두 사람의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신앙생활과 육신적 삶 부분에 대한 차이를 정리해 보고 우리가 갈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5)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차이는 단을 쌓는 것입니다. 롯은 단을 믿는 사람이지만 단을 쌓은 기록은 없습니다. 언약을 잡는 행위나 그 언약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이 기록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6) 두 번째는 말씀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많이 있는데 롯에게는 마지막에 천사가 나타난 기록 외에는 다른 기록이 없습니다. 

  7) 다음으로는 언약을 누리는 삶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갈등, 몸부림, 응답, 승리, 정복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롯은 이런 신앙생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기록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기록상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또 그냥 넘어가기에는 결과가 너무 참담합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슨 분명한 영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8) 그러면 롯은 과연 어떻게 하였어야 했습니까?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9) 첫째로 롯은 단을 쌓는 일을 지속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만일 아브라함과 함께 살았다면 그는 수시로 말씀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단을 쌓을 때 옆에 있기만 해도 그는 그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과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이 언약 고백하는 일을 지속했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필수이고, 근본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없고, 언약 고백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과 소통이 되겠습니까!

  10) 둘째로 그는 수시로 아브라함을 한 번씩 방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자기 삶에도 적용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많은 증거를 포럼 했을 것이며, 가능하면 롯은 온 가족과 함께 한 번씩이라도 아브라함을 방문하였어야 했습니다. 정규적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11) 세 번째로 누림에 대한 기록이나 몸부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언약으로 도전을 하거나 언약을 지키려고 하는 삶 속에서의 씨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단을 쌓는 기본 신앙생활도 없는데, 삶 속에서의 갈등을 언약으로, 기도로 해결하려는 몸부림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2) 그러나 복음을 바로 알고, 그리고 누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알고 조금 복음을 따라 갔는데도 전도되는 증거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만일 롯이 부족한 중에도 이런 누림과 전쟁의 삶을 살고, 한 번씩이라도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말씀도 받고, 힘도 얻고 하는 이런 신앙 생활을 했다면 그에게 전도 문이 열렸을 것입니다. 

  13) 소돔과 고모라는 재앙지대였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 살았을 것이고, 그 중 에는 복음을 받고, 그 저주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6명만 더 구원을 시켰으면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건진 시대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은혜로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잘 몰랐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아브라함 삼촌 집에도 잘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15) 복음을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습니다.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 복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복음도 처음 들어 본다고 하는 신자가 한 둘이었습니까! 

  16) 변질되었거나 섞였거나 틀린 복음을 듣고 그것이 바른 줄을 알고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자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롯과 같은 인생을 사는 신자가 얼마나 많으며, 분명히 예수를 믿는데도 불신자 상태와 꼭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17) 우리는 복음을 바로 알았으면 단을 쌓는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삶과 응답은 누림으로 받습니다. 그 고백과 예배와 기도를 통해 말씀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으로 살면서 언약을 누리는 영적인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 문이 열립니다. 경제와 자녀와 건강뿐 아니라 전도의 문도 열리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2. 하나님은 자녀의 구원 중심

  1) 천사는 롯과 그 가족이 소알 성으로 안전하게 피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22절).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의 시간표는 창세 전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보잘것 없는 신앙 생활에 불과한 롯의 구원에 맞추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선이고, 하나님의 시간표는 늦출 수도 있다는, 너무나 감사하고 죄송한 말씀입니다.

  2)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이것이 우리의 신분이며, 권세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구원에 감사하고, 우리의 신분과 그 안에 있는 권세를 누리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약 누리고, 다시 한 번 잡고 깊이 기도하고, 예배로 말씀 따라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롯이 아니고, 아브라함 같은 인생이 다 되길 바랍니다.​